
무등산은 광주와 전라남도 담양, 화순에 걸쳐 있는 광주·전남의 진산(鎭山)이다. 산의 높이는 1,187m로, 높이에 비해 산세가 유순하여 어느 곳에서나 둥그스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무등산은 대체로 토산(土山)이나 육산(肉山)으로 이뤄져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는 반면, 정상에서는 곳곳에 펼쳐진 주상절리와 괴석에 의해 웅장한 암석미를 자랑한다. 특히 규봉(圭峯), 입석(立石), 서석(瑞石)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진 주상절리는 그 규모가 크고 독특한, 어디서나 볼 수 없는 사례 중 하나로 주상절리 형성과정에 대해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무등산에는 화산지형을 토대로 발전한 다양한 역사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무등산의 산세와 자연지형이 반영되어 조영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무등산만이 가지는 독창적인 건축문화재의 특징을 중심으로 언급하고자 하였으며, 무등산의 문화경관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어떻게 하나의 권역을 형성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였다.
무등산권 역사유적의 유형으로는 불교건축, 유교건축, 누정(樓亭), 성곽(城郭), 근대건축 등을 들 수 있다. 역사유적의 범주는 현존 유물에 대한 조사 결과이며, 무등산 주변의 고건축과 근대건축을 포함하는 건조물이 중심 대상이 된다. 다수의 이 유적들은 조선시대의 불교나 유교와 관련된 것들이 주를 이룬다.
무등산은 오랜 기간 동안 주변 거주민들의 휴식처로서 이용되었으며, 이에 속하는 역사유적 또한 많은 기록과 현존 유구를 남겼다. 이 기록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서나 여행기, 시문, 기문 등으로 남아 있는데, 조선시대 이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무등산 권역의 건축문화재는 현존하는 종교 건물과 민속자료, 그리고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토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무등산의 건축문화재를 특징에 따른 종류와 현존 유적 현황으로 분류하면 다음의 <표 1>과 같다. 대표적으로는 불교건축, 유교건축, 누정, 성곽과 같은 중요문화재, 민속자료와 근대건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존하는 이 유적들은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등산의 문화경관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화재들은 대부분 왜란, 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전란 등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 파괴되거나 훼손되었으며 근래에 조금씩 중수․보수되었다. 그러므로 무등산권역에 분포하는 다수의 유적들은 기록에 비해 현존하는 대상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들 문화재들은 역사기록과 시문학의 사료를 통해 보았을 때, 의향으로서의 가치와 선비문학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표 1> 무등산 건축문화재의 종류와 현존 현황
종류 | 현존 건축물 현황 |
불교건축 |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규봉암, 관음암, 만연사, 안양암, 석불암, 미륵사 등 |
유교건축 | 충민사, 경렬사, 충장사, 운암서원, 화순향교, 광주향교, 창평향교 등 |
누정 | 독수정, 상월정, 죽림재, 소쇄원, 면앙정, 관수정, 식영정, 서하당, 부용당, 수남학구당, 연계정, 송강정, 동강조대, 명옥헌, 몽한간, 남극루, 문일정, 송포정, 소산정, 만옹정, 관가정, 환벽당, 풍암정, 취가정, 삼괴정, 임대정, 만화루, 고사정, 물염정, 망미정 등 |
성곽 | 무진고성, 동문지 등 |
근대문화재 | 오지호생가, 국립5·18민주묘지, 학선재, 의재미술관, 춘설헌 등 |
먼저 불교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 원효사(元曉寺), 약사사(藥師寺), 규봉암(圭峰庵), 관음암(觀音菴), 만연사(萬淵寺) 등을 들 수 있으며, 근래에도 다수의 사찰과 암자 등이 지속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가운데 의상봉 건너의 원효사와 남쪽 중머리재 아래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증심사와 약사사, 장불재 너머의 규봉암, 화순 만연산 아래 만연사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무등산에는 예부터 팔람구암자(八藍九庵子)가 있었음이 구전되고 있으며, 곳곳에서 가람지와 기와 조각들을 볼 수 있다. 무등산 주변의 옛 가람터에는 석탑과 불상, 석등, 부도 등이 다수 남아 있어 많은 사찰과 다양한 조영 활동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중요 유적과 함께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는 소규모의 암자도 포함할 수 있는데, 원효계곡 윤필봉의 안양암(安養庵)과 규봉의 석불암(石佛庵) 등을 들 수 있다.
유교 관련 유적으로는 서원(書院)과 사우(祠宇)를 들 수 있다. 그 대상으로는 충민사(忠愍祠), 경렬사(景烈祠), 충장사(忠壯祠), 운암서원(雲岩書院), 화순향교(和順鄕校), 광주향교(光州鄕校), 창평향교(昌平鄕校) 등이 있다. 이 유적들은 유교문화의 전통과 함께 의향으로서 광주·전남의 역사적인 중요성과 인물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유교 유적의 범주에는 향교나 서원과 같은 고등교육기관, 서당과 서실과 같은 하급교육기관,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사우, 선영의 묘역에 건축된 재실(齋室) 등의 종교 및 교육시설이 포함된다. 이중 일정한 규모 및 역사적 배경을 갖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향교와 서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전남지역의 향교나 서원건축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사례가 현저하게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전라도는 사대부 문화가 미성숙한 지역으로 오해를 받는 일도 있으나, 이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대부분 훼철(毁撤)된 것이 큰 이유이다.
이러한 영향에 의해 무등산 주변의 현존 유교 유적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 유적들은 무등산과 이 지역에서 배출된 인물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즉 유교 관련 유적들은 무등산을 배경으로 활동한 다수의 역사적인 인물들과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충민사, 충장사, 경렬사, 운암서원, 충효동 정려비각(忠孝洞旌閭碑閣), 화순향교 등이 대표적 대상이다. 무등산에 유존하는 유교 관련 유적들은 국가의 철폐령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었으며, 근래 들어 새로이 조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함께 무등산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유교 유적으로는 광주의 광주향교, 지산재, 병천사, 담양의 몽한각, 담양향교, 창평향교, 죽림재가 있다. 화순에는 화순향교와 함께 동복향교 등이 있다.
무등산권역의 불교, 유교 관련 중요 건축과 함께 문화경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건축으로 누정건축이 있다. 이 누정들은 무등산 주변, 즉 광주, 담양의 원효계곡과 화순의 수계에 다수가 위치하여 하나의 시가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무등산에 분포하는 누정은 원효계곡과 창평에 조영된 것, 그리고 화순읍과 적벽에 위치하는 누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무등산권, 즉 이들 세 지역에 위치하는 누정들은 무등산의 직․간접적인 영향에 의해 조영된 것으로, 당대 문인들의 교류가 지속되는 가운데 유교․도가적 사상이 반영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누정들은 개체 수에서나 건축적 특징에서 무등산의 역사경관을 대표하고 있다. 무등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누정은 역사적․지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무등산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등산 주변의 누정 조영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새 왕조의 개창에 반대하는 선비들이 낙향하여 은일처사의 공간을 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는 점차 사대부들의 이상향을 담은 별도의 정원인 별서(別墅)가 유행하게 된다. 이후 16세기 조선시대에는 사림의 등장과 함께 사화로 인해 정치에 대한 회의를 느낀 선비들이 은일․은둔을 위해 무등산을 중심으로 다수의 누정을 조영했다. 이 시대에는 송순(宋純, 1493~1582)의 면앙정(俛仰亭),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소쇄원(瀟灑園), 정철(鄭澈, 1536~1593)의 송강정(松江亭) 등에서 문인들의 교류가 있었고, 수많은 정자들이 지어졌다. 즉 무등산에서는 많은 시인묵객들이 누정을 중심으로 교류하고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문화공간을 형성하였다. 무등산은 사화로 인해 상처 입은 선비들이 계산풍류를 즐기면서 휴식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장소이자 선비정신을 되새기는 절의의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은 또한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의병의 호국사상을 키우는 산실이 되었다. 대부분 무등산 어귀의 천변과 호수 주변의 야트막한 언덕, 그리고 산중에 조영된 이 누정들은 당대의 문화적 경향과 교류 관계, 그리고 조영자의 의지와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이외에 무등산과 관련한 중요 고건축으로는 성곽[무진고성(武珍古城)], 성문지를 들 수 있다. 이 유적들은 무등산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무등산과 그 주변에는 근대에 들어서도 다양한 건조물들이 건축되었다. 이들 문화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새로운 건축 양식과 사조가 유행하면서 발전된 근대 건축 양식이 반영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문화재들은 일부 전통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도 있고 현대건축의 특장점을 살려 새로운 조형미를 만들어낸 것도 있어 주목을 받는다. 현 전통문화관에 이전된 학선재(鶴仙齋), 오지호생가(吳之湖生家), 의재미술관(毅齋美術館), 춘설헌(春雪軒),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증언하는 국립5·18민주묘지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